장 25

오랫동안 고요했던 무애지애의 황혼이 이날 새벽을 맞이했다. 숙구는 붉은 도포 하나만 걸친 채 허공을 밟고 왔다. 그의 뒤로 수많은 노을빛이 쏟아져 내려와 식택만의 눈속에 있던 황혼의 어둠을 몰아냈다.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바람을 타고 온, 긴 머리가 흩날리며 꽤나 초라해 보이는 숙구의 그림자였다.

"네가 소사제를 데리고 떠나. 여기는 내가 맡을게."

나란각은 일엽고범이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은 어떤 결심을 품은 듯했다. 한 걸음 내딛자 공간이 갑자기 찢어졌고, 온통 칠흑같은 발톱이 그녀의 양손과 하나가 되었다. 살신기는 원.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