장 26

군서

화려한 비단 옷자락이 흩날리고, 안개 속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가운데, 누군가의 한숨이 들려온다. 누구인지, 왜 한숨을 내쉬는지 알 수 없지만, 마음속에는 사랑과 미움이 뒤엉킨 감정만이 맴돌 뿐, 말로는 표현할 수 없구나!

—군서(君書)

초봄의 밤비가 눈발과 뒤섞여 내리는 가운데, 일엽고범은 처마 아래 서서 손을 내밀었다. 소매가 한쪽으로 젖었지만, 눈송이 하나 남지 않았다. 거의 300년간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온 그는 초봄에 비와 눈이 함께 내리는 것이 정상인지조차 알지 못했다. 나란걸의 상처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...